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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I

[자유기고]행복열차 무료 탑승기(記)


 

나란 사람은 한마디로 세상살이가 수월하지 못한 부류에 속한다.

지나치게 스스로를 비하하고 싶진 않지만 사소한 일에도 끙끙대는 못난 성격의 소유자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조그만 일이 있어도 남보다 크게 생각하고 결국 밤에 그 일들을 침상 안으로 끌고 들어와 생각에 빠지다보니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숙면하지 못하니 마음도 무겁고 우울하여 건강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건강칼럼을 보았는데 햇빛을 쬐어주면 비타민D가 합성되어 숙면에 도움을 줌은 물론 마음까지도 행복 해진다나 어쩐다나. 물론 이 사실을 전부터 모르진 않았으나 자연스레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마음에 와 닿았다.

그 후 몇 번 그걸 실천해보았다. 우선 햇볕에 그을리면 안 되는 얼굴엔 선크림을 과하게 바르고 팔다리는 건강을 위해 좀 희생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시간대는 낮 10시~2시 사이가 좋다 하여 오전 10경에 주로 바지의 다리만큼은 걷어 올리고 나다녔다.

그게 그렇게 이거다 할 만큼의 큰 효과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마음만은 행복해졌다. 우울함이 귀신같이 사라지고 그간 못 가져본 삶의 의욕이 생겨나 처박아 둔 화분에 쪽파를 심기까지 했다. 그 시간대에 수없이 돌아다니시는 어른들의 무리가 떠올랐다. 그분들이 그래서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공원에서 수없이 종종 거리며 부족한 한걸음 한걸음을 힘들게 떼신 걸까!

 

요즘은 맑고 포근한 가을날의 연속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할 일 있으면 얼른 해놓고 ‘산에 가야지, 아니 공원 가야지’ 사실 말은 공원이나 야산이나 다름없다.

오늘도 대충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시간은 10시 30분 경!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나도야 간다. 젊은 날을 이대로야 보낼 수 있나(이런 시인가 노랜가 있었나! 대충 확실친 않지만 박용철인가 정지용의 시였던 걸로.. 시에 곡을 붙여 가수가 불렀을테고..).

 

늘 다니는 가을 산은 정갈했다.

아까 산비탈에 들깨를 조금 심어놓고 어렵게 수확하는 한 어머니를 좀 도와드렸다. 도움이라 해봐야 그분이 힘들여 겨우 끊어 놓은 들깨 대를 받아 가져오신 유모차보행기에 놓아드리는 일을 했을 뿐. 너무 거동이 힘드신 분이라 좀 보탬이 될까하여 웃으며 먼저 “제가 받아드릴게요” 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어머니를 생각하며 내 어머니를 생각하며 햇살이 비교적 많이 내비치는 풀 베어 단정한 길을 걸어 다녔다. 노랑나비 아니 정확히는 갈색 나비가 날아다니고 흰나비도 덩달아 팔랑대는 풀밭 길.. 사람들은 공원 안쪽에서 이미 시끄럽게 아니 정답게 그들만의 공개방송 중이다. 나는 햇볕을 받아 희게 빛나는 다리를 보며 ‘이 정도면 적어도 다리 색깔만은 예쁘네’ 라고 생각해봤다. 그 순간 갑자기 저만치 앞에서 밤색 털빛을 가진 짐승 두 마리가 날아가는 것처럼 뛰어 앞으로 훅 지나갔다. 혹시 노루 아닐까? ‘세상에나 이런 곳에 무슨 짐승인가! 이리 사람이 많이 다니는 산에’ 하지만 그 길엔 나 말고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의 흔적들은 보이고 소리는 들렸지만 인적 드문 그런 곳이기도 하다. ‘나는 하필 왜 이런 곳이 맘에 드는 것인고..’

 

 

금방 지나간  노루로 보이는 두 짐승은 아름다왔다. 힘있게 뛰는 듯 달리는 듯..그 장면은 아마도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하나는 어미이고 바로 옆은 새끼로 짐작된다.  몸집에서 상당한 차이가 났으니까. 이곳에 천적이 없으니  그들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벤치로 가 앉았다. 두 어머니들이 앉아 자식 얘기를 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분들은 바지가 걷어올려진 내 다리로 고갤 돌리고선 무언의 의문 가득한 눈동자.. 그게 민망하여 곧 “아, 예! 제가 그냥 햇볕 좀 쬐려고요.”. 묻지도 않은 말을 맥없이 하고 시계를 본 후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시험날인지 뭔 날인지 몰라도 오전인데도 학생들이 일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학교를 탈옥하는 순간 그 특유의 재잘거림들...나도 저 때가 있었지...

 

내가 행복했던 날은 거의 언제나 자연과 함께한 때였다.

어릴 적 공기놀이 하던 운동장.. 나물 캐러 갔다가 도마뱀을 만나면 꼬리를 끊어줘야 우리나라가 안 망한다느니 어쩌니 해서 발로 도마뱀 꼬리를 누르고 있던 그 무렵.. 동생이 교장 선생님 댁 꽃사과를 따 와서 나눠먹고 맘 졸이던 때 ..풍뎅이를 먼저 더 잡겠다고 상수리나무로 숨차게 뛰어가던 기억.. 단수수를 잘라 싸가지고 새 쫒으러 논에 가서 창피해서 크게 ‘우여’ 소리를 못 질러 이리저리 실컷 다리품을 팔아야 했던 날들.. 좀 자라선 교복을 깨끗이 다려 입고 혼자 고독을 씹으며(그때는 그렇게들 표현함.)코스모스 핀 길 따라 등교하던  추억.. 화사한 자귀나무 꽃그늘 아래서 릴케의 시집과 지드의 좁은 문을 읽던 시절.. 어디 그뿐이랴. 지금 와 생각해보면 수없이도 좋았던 기억들은 많다. 여기에 쓰지 못하는 것들도 있지 싶다.

 

사실 누구에게 섣불리 아는 척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 가을 우울하고 외로움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 있다면 “서슴지 말고 집 밖으로 나가 자연과 함께 하세요. 그것도 오전 10시경 햇살이 퍼질 무렵 꼭 무료 행복열차를 타 보세요”라는 말을 선사하고 싶다. 지금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사람 또 있을지 모르므로. 그 분들을 위해 오전 시간을 잠깐 할애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아마 더 많이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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