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1년 선고’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2호 법정에서 구속된 채 이항로 군수가 운집해 있던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백인백색의 감정이 복잡 미묘하게 내려앉은 저마다의 얼굴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공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세상의 이치란 그런 것이던가! 지역의 수장으로서 어제와 너무 대조되는 오늘은 무거운 침묵만이 그의 어깨를 휘감고 있다. 이때 시선을 그쪽으로 집중하던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밥 잘 먹고 힘내라.” 이에 이 군수가 즉답하였다. “억울 합니다“ ........! 이 군수는 진안읍 단양 태생으로서,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군수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당선되었고 2017년 민주당에 입당, 2018년 제7회 선거에서도 70%으로의 득표율로 일찌감치 군민의 낙점을 받은 바 있다. 높은 지지율만큼이나 군민의 관심과 기대도 컸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했으나 크고 작은 잡음이 있었다. 저돌적이리만치 뚝심 있고 의욕적이며 추진력이 강한 반면, 순수하고 인간적이다는 평을 받는 그는 평소에 '기부 행위 하지 말라’고 늘 주위에 당부했다고 한 관계자
연이어 찾아 온 미세먼지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있다. 봄은 봄이로되 진정한 봄은 오지 못하였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숨쉬기가 불안하고 어째 답답한 건 매한가지다. 세상이 발전하고 남의 장기를 떼어다가 이식도 하는 세상인데 그걸 어째 못하랴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기 질이 나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그만큼 무엇인가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공장이든 자동차든 화력 발전소든 말이다. 결국 인간이 만든 것에 인간이 당하고 마는 셈이다. 잘살기 위해서 편리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그 무엇이 이젠 인간을 공격하는 세상에 살게 되어버렸다. 이제 사람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좀 더 편리한 것을 포기해야 하고 좀 더 돈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나쁜 공기는 가장 먼저 아기들에게 해롭고 어린아이, 임산부, 호흡기나 심혈관계 질환자에게 특히 문제가 된다 하니 이런 환경에서 애를 낳아 기른다는 게 얼마나 큰 모험이냐 말이다. 어른들은 낳으라 낳으라 하지만 기성세대 보다 배움도 많고 보다 현실적으로 직면해 있는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어른으로서 실로 많이 미안한 부분이다. 꽃 소식을 전
제각기 손을 흔들며 떠나고 있습니다. 한 대의 버스가 줄줄이 선 사람들을 싣고 어디론가 총총히 가버리듯이... 우리 집에서도 벌써 큰 아이가 대충 짐을 꾸려 타지로 가고 휑뎅그렁한 빈 방의 남은 옷가지와 몇 권의 책만이 한 사람의 부재를 알린 채 언제 다시 올까 주인을 기다리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안 온다는 것쯤은 압니다. 졸업식장의 아이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지금처럼 다시 모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헤어지면 영원히 다시는 못 볼 친구들이 그토록 많으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늘 밝으시거나 혹은 꾸지람으로 눈물을 쏙 나오게 만드시던 선생님들! 내 옆자리 정님이, 가까웠거나 멀었거나와 크게 상관없이 이렇게 못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내년에 봄이 또다시 온다고요. 아니에요. 아니지요. 내년에 오는 봄은 저기 저 나무의 이파리부터 가지마다의 개수부터 나무의 색깔까지가 똑같지 않으니 그렇게 똑같은 봄이 오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가물거나 홍수에 태풍에 아니면 심지어 사람들의 장난으로부터라도 그만 변을 당해서 잘 보면 작년과 다르니까요. 여하튼 간에 마음에 깊은 애증을 갖지 않는 한 연연하지 않으렵니다. 그들은 그 나름대로 언제나 평화
현대사회에 있어서 ‘허기(hunger)’는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시장 자유주의 논리 위에 있는 세상은 오히려 화려함과 풍족하다는 말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빈곤과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 관한 문제는 연일 쏟아져 나온다. 청년 실업률이 10%에 다다르고, 거의 4년째 2%에서 3%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지금,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은 경제적인 빈곤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날이 벼려진 칼날 같다. 인터넷 기사에 댓글만 봐도 현 문재인 정부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혹은 과하게 깎아내리는 양상이 펼쳐진다. 중도의 온건한 온도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유 튜브 홈페이지에서 가짜뉴스를 퍼트려 특정 사회정치적 성향을 옹호하거나 선동한다. 주 창윤의 <허기사회>는 과도한 흥분과 공분을 현대인의 정서적인 허기에서 찾고 있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에 일어난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사람들은 말 그대로의 배고픔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는다. 다만 이미 비어버린 밥그릇을 보며 끝이 없는 공허감과 보이지 않는 정신적 허기를 느낀다. 한 때 수많은 미디어는 ‘치유’, ‘힐링’의 코드로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저자 주 창윤은 이런 상황을 ‘퇴행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