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온 편지] '길'

2019.07.26 11:42:25

얼마나 오고 또 갔는지 모른다.

나의 길!

의식과 무의식의 모든 부분을 점령해버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얼굴에서조차 내 삶의 가는 길이 투영되어 있음을 느낀다. 긴 세월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지는 화석처럼 그렇게 어느새 나도 비밀스럽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때때로 우리는 삶의 배경이 안이했던 비교적 평화로운 얼굴을 지닌 사람들과 이와는 달리 치열하게 살아와 고생의 흔적을 고스란히 내포한 얼굴들과 마주한다. ‘참 곱게 나이 든 얼굴이다’ 혹은 ‘어렵게 지내온 분이구나’ 말없이 스치며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내 모습은 어느 쪽인가를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굳이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나 역시  세월과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얼굴로 맞이하며 시간 속으로 더욱 깊이 걸어들어가고 있다.

 

하늘엔 별이 있고 들에는 시원한 바람이 있고 샛강에는 여유로운 물결의 파동이 있음을 하나 둘씩 젊음의 푸른 잎이 지기 시작하는 지금에서야 생각하게 된다. 여태 걸어 온 길도 문득 내 모습도 나의 삶도 반추한다.

 

 

그림을 그렸더라면!!!!!!!!!!!!

 지금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여기서 살았을까, 서울서 아니면 전혀 생각지 못한 곳?, 지금의 옆 지기가 아닌 그 누구?, 내 아이는 어떤 것들이 생겨나왔을까...

 

학생 시절 아니 어린 시절,  어느 시기랄 것도 없이 우리는 길을 묻고 선택하고 때론 선택을 강요당한다.

정녕 나의 길인데도 온전히 스스로의 판단으로만 선택한 길을 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리다는 이유로, 세상을 살아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해서 가족과 협상하고  현실과  타협하고 아니면 부모들의 내 대신 선택으로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현재의 삶을 딱히 원망하거나 탓하지는 않는다. 그럴 일도 아닌 것이 어느 길을 갔다 해도 항상 나에게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존재하는 것일 테다.

한번뿐인 인생이니 스스로에게 온전히 맡겨야 한다,  결혼할 때도 말리지 말고 당사자의 소신에 따라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들만의 판단이 정말로 행복한 삶을 보장해줄까? 그 역시 미지수다.

 

어느 면에서 지금은 길을 묻고 선택하는 계절이다.

머잖아 수시원서 접수를 앞두고 수많은 전국의 고3 학생들이 각자 나름의 길을 능력과 취향에 맞게 소신껏 선택해야만 하는 너무도 중요한 시기에 직면해  있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지원할 것인지 결정하고 그에 맞는 마음의 준비와 아울러 ‘나는 그에 참으로 걸맞는 학생이요’를 ‘증명’해야만 하는 시간을 앞두고 있다.

어디 고3 학생들뿐인가, 초6, 중3, 하반기 바늘구멍 같은 공채를 앞둔 사회 초년생들, 결혼을 저울질 하는 젊은이, ‘이참에 회사를, 직업을 확 바꿔버려’ 하는 직장인들, 아들 집 이사에 논밭을 팔아 보태고 따라가 살까 망설이는 어떤 엄마까지 등등...

그러고 보니 길을 선택하고 고민하는 건 남녀노소가 따로 없고 시간 공간의 제약이 없다. 그냥 매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냉장고를 잘 고르면 10년을 잘 쓰고 쇠고기를 잘 고르면 저녁이 따뜻하다.

 

하지만 이런 차원이 아닌 평생의 나아갈 길을 정하자니 애들과는 늘 다툼이요, 대개  선택과 결정의 갈림길에서 번민하는 학생을 둔 경우는 집안 분위기가 그리 훈훈하지 못하다.

엄마 아빠랑 다투기 싫어 늘 독서실에만 처박혀 있는 아이도 있고 한 번도 생각 안 해 본 간호학과를 가라 해서 전쟁 중인 집도, 교사가 되라고 말끝마다 설교를 늘어놓는 부모도 , 지방대에 안가고 싶은데 기어이 지방대로 가라는 경우도, 순전히 부모랑 떨어지고 싶어서 서울로 학교를 가고 싶다는 아이(서울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 지방은 따분하고 재미 없어서 등)에 이르기까지 일곱 빛깔 무지개 같은 사연들이  하나쯤은 다 있을법한 시기다.

 여름방학 동안 실컷 심사숙고 하여 9월 초순경에 수시 원서를 접수해야 하니 지금 이러한 홍역을 치른다.

애들과 일찌감치 타협해서 갈 길을 정한 경우는 얼마나 가벼울 것인가, 그것도 부모들이 선호하는 안정된 길을 가고 싶다는 아이를 둔 부모가 솔직히 부럽다. 그 ‘안정’에 매달리는 걸 나무랄 수가 없는 게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끝없이 A/S를 해주어야 하는 존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 세대를 보고 학습한 결과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하지 말라 한다.  '각자 소질과 적성에 맞는 길을 선택하라'고 교과서 같은 원론에 충실한 이야기들을 한다. 안정된 길만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인지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세상을 바로보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정의로운  마음에서 더욱  반기를 드는 것 같다.

‘안다. 우리도, 어른으로서 부끄럽다만 근데 너희들이 능력이 있다 해도 일자리가 없다 하잖아', 이런 저런 이야기로 출발하여 애 얼굴만 보면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시작이 된다. 어떤 때는 쫓아 다니며 한다. 학원이며 학교며  독서실에 밤낮없이 바쁘니까 ... 대개 이럴 때의 반응을 굳이 이야기 하자면  펄쩍 뛰고 꽥 소릴 지르기 일쑤다. 학교에서 귀가 따갑도록 듣는 이야기를 엄마가 또 그대로 뭐 재탕한다나 뭐라나.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될것만 같아서 그 찡그리는  표정과 인정머리 없는 말 들을 각오를 하고 용감무쌍하게 감히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다. 이런류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란 없다. 조금 서운할 때도 있긴 있지만 자식인지라 거의 항상 예쁘고 마냥 안쓰럽기만 하다. '그런 애가 아닌데 공부하랴, 뭐 하랴 신경 쓰는 데가 많아 그러겠지!'  결국  방문을 꽝 하고 닫아버리거나 상황을 안 좋게 인식하고 난 후에 나 스스로 문 닫고 나옴으로써 일단락되는 경우가 많다.

 

잠을 자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문득 갖가지 상념에 사로잡히는데 그 절반 이상이 자녀 문제다. 늦게 다니면 위험한데 이 밤에 잘 들어와 자나? 전화해 보기도 늦은 시간인데..작은 것은 어디를 보내야 하나,  혹시 안 되면 재수를 시켜, 말어, 정말 모르겠다. 다 지들 운명대로 살겠지... 그렇지만 그건 아니지, 운명도 결국 성격과 선택이라던데...

어쨌든 정답은 없다.

 

며칠 전에 큰애가 한 말이 불현 듯 뇌리를 스쳐간다. “사람은 다 자기가 자기 그릇 알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걔 똑똑해서 알아서 잘 할 거예요.” “구르고 굴러서 결국 자기 길 찾아가요.”

 

"**야, 너무 간섭마라. 그래서 부모 말 듣고 선택했다가야 두고두고 원망한다고 하더라."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언제나 나에게 있어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  한 가지는 있다. 지금껏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고민하고 방황할 때도 내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고 타인을 원망해 본 적은 없다. ‘오늘의 모든 결과는 나의 선택이었으니 내가 마땅히 감내해야 하느니... 누굴 미워하고 탓하지 말자. 좀 더 신중하지 못했던 내 부족함이다.’

 

고등학교 시절 창문 너머로 보이던 복사꽃인가 살구꽃인가가 핀 시골길!

그림처럼 탱자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진 초가집에 분홍 꽃이 애달프도록 아름답던, 눈에 손에 잡힐 듯한, 꼭 한번쯤 걸어보고 싶었던 길을 끝내 가보지 못하고 졸업을 하고야 말았다.

언제나 항상 내 마음 너무 가까운 그 길을 생각하면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글을 지울 길 없다.(그 무렵 배우던 국어 교과서에 실렸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작게나마 길을 선택한다. 생명이 계속되는 한 누구나 길을  선택하며 살아갈 것이다. '후회'라는 무거운 이름없이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여운은 소소하고 아련하게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내게 있어 가지 않은  길은 어쩌면  저 산 기슭에  핀 연분홍 꽃인가!



 

 

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두 길을 다 갈 수 없는 아쉬움에 그 자리에 서서

한 길이 풀숲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어딘가에서

나는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하겠지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달라져버렸다고.

                                                       -R. 프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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