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온 편지 ] 진상이 언니

2019.03.20 12:40:07

 

초등학교 3학년 햇살이 눈부시던 어느 날이었다. 4교시 청소를 끝마치고 여느 때처럼 아이들의 무리에 섞여 막 하교하려던 무렵, 운동장 저편에서 몸집이 작달막한 남선생님의 자전거 탄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혼자가 아니라 안경을 쓴 선생님의 어깨 너머로는  머리카락이 하늘거리는, 허리쯤 내려온 여학생이 뒷자리에 함께 타고 있었다. 그 여학생의 형상이 시야에 밀착되기도 전에 보자마자 ‘예쁜 언니라서 태워 주나 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자전거가 가깝게 달려오자 그것은 완벽한 사실이 되고야 말았다.

 

그 때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무용을 하는 날씬하고 속눈썹이 긴 인형 같아 보이는 여학생들도 종종 본 적 있으나 오늘 본 이 언니는 뭔가 느낌부터 좀 남달랐다고 할까,  ‘언니’라고 혼자서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실상 내게 언니라는 것은 아예 없다. 이름도 학년도 모르는데 ‘진상’이라는 그의 이름과 6학년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좀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때 뭇 학생의 이름을 알게 되는 방법으로는 이름표를 본 다거나 시상식 때 교단에서 호명할 경우에 듣게 되어서다. 그래저래 알게 되었지만 혹시 그 언니가 보일라치면 눈에 더욱 힘을 주어 이름표를 보았다. 또 그 언니가 6학년이라는 것을 안 것은 가만 보면 6학년 동사 쪽으로 늘 걸어갔기 때문이고 자전거를 태워주던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이었다. 재잘대는 학생들 속에 섞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체구에 평범하게 웃거나 얘기하는 모습을 가끔 보았다. 긴 머리를 한 번에 묶거나 그대로 풀어 놓아도 나름대로 조화로웠다.

 

무언의 관심은 그 언니에게 영자라는 여동생이 있다는 것까지도 알아내도록 만들었다. 동생은 이름도 좀 그렇거니와 조금 닮기는 했으나  어쩐지 수다스러워 보였고 머리도 짧았으며 하는 행동 대부분이 정반대였다.  보통의 여자 아이들 같았다. 영자는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땅 따먹기, 돌 공기 등 그런 놀이를 수시로 하곤 했다. 예전에는  요즘과는 달리, 마땅히 다닐 학원도 공부할 곳도  없으니 많이 움직였고 대부분 가난하였지만 순박하던 시절이었다.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무작정 어떤 남학생이 달려와 고무줄을 끊어 가도 항거할 줄 모르고 삽시간에 그냥 툭툭 털고 교실로 들어 가버리곤 했다.

 

예쁜 그 언니는 머리가 짧아진 채로 중학교 교복을 입었을 때도 고등학교 교복을 입었을 때도 늘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가까이 있어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오고가는 모습이 보였다.

 

남들보다 조금 큰 키에 별로 이렇다 할 것이 없이 생긴 나는 그 언니가 부러웠다. 한참 사춘기로 몸살을 하던 터라 애들과의 사귐도 별로 없고 말수도 없이 그럭저럭 학교에 다녔다. 봄이면 교정에 피던 하얀 목련을, 학교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로 피던 희고 소박한 찔레꽃과 검붉던 열매를, 그 다음 길에 이어져 피던 가을꽃 코스모스와 여기저기 함께 어우러진 억새풀을 참 많이도 사랑하던 볼 빨갛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즈음, 애들이 무리지어 모여지면 이상한 얘기들이 오갔다.  남녀 선생님들의 뒷 이야기로 시작하여 누가 누구랑 사귄다는 둥 몇 반 누구는 선생님에게 영화보다 걸려서 정학 처분을 받았다는 둥 생각만 하여도 겁이 나고 떨리는 소문들이었다. 남학생과 사귀는 일은 금방이라도 검은 먹물이 흰 교복에 번질 것만 같이 위태롭고 위험천만한 일이어서 웬만큼 간 큰 여학생이 아니면 못하는 일로 여겨졌다. 남자랑은 얘기만 해도 애가 생긴다는 애도 있었으니까.

 

그런 중에 바로 그 언니 이야기가 있었다.

나의 귀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정말이지 관심 없는 척 했으나 사실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얘, 중학교에 김**라는 선생이라고 있는데, 그 선생님이 *진상 언니랑 사귄대, 그 선생님은 노총각인데 결혼을 집에서 그렇게 하라 해도 안하는 이유가 그 언니 때문이래, 근데 이건 우리 언니가 알려줬는데 비밀이야.”

'선생님이 어떻게 여학생과........' 하고 의심했지만 곧 믿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진상이 언닌 너무 예쁘니까’.  아름다운 것에 공감하는 부분은 사람들에게 있어 대체로 일치하는가 보다. 심지어 아가도 예쁜 얼굴을 더 오래 응시한다니.

 

그 언니의 아름다움은 단지 외형에서 풍겨지는 것 외에 어떤 분위기까지도 더하고 있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청초함이 그대로 내재된, 그렇다고 유치하지도 않고 성숙하여 너무 세련된 것도 아니고 하여간 표현을 잘 못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언니를 본 것의 전부가 언니 나이13세~19세까지로 인생에 있어  순수하고 꾸밈 없던 때로 집중되었으니 말이다. 그 이야기뿐 아니었다. **선생님이 진상이만 특별히 어쩌고저쩌고 ...  언니 동년배들에게서도 흘러 나왔다.

 

특히, 김**선생님은 사실 우리 부모님과도 아는 사이였는데 자기 집에서 독자였기 때문에라도 혼사를 재촉하는 상황인 것쯤은 당연했다.  당시는 나이 30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으므로 남들의 이목이 집중될만도 하였다. 김 선생님과 언니와의 이야기를 소문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좀 어쩐지 석연치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는 곧 잠잠해졌다. 그 부류의 선배들이 졸업을 하게 됨으로써.

 

교정의 목련꽃이 몇 차례 피고 졌던가?

얼마 안 있어 오지 말았어야 할 순간이 끝내 도래했다. 안 와도 되는 일들은 쓸데없이 왜 꼭 찾아드는지! 그 일은 언니가 졸업하고 1년이나 지났을까 2년이나 지났을까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어느 날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에 의해 선포되었다. 교실은 이내 숙연해졌다. “우리 학교를 졸업한 선배 *진상이란 학생이 안타깝게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진상 학생은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농협에 취직하였는데 *진상과 사귀던 남자가 돈을 요구한 것을 거절하자 그는 칼로 *진상이를 해쳤다”. 라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는 요지였다.

 

그 언니는 그날부로 부정한 일에 휘둘리지 않은 의로운 사람으로 치장되어 학생들 가슴에 일부 남고, 나머지는 교실 뒤 게시판에 한 장의 쓸쓸한 사진과 함께 스크랩 되어 붙여졌다.

'아!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나중에 처벌 받더라도  돈 그냥 가져다가  줬더라면...  그리고 왜 하필 언니에게' .........

한 번 대화해 본 적도 없었고 이름마저 겨우 주워들어서  알게 되었지만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갈 것 같았으며 이름까지도 신기하고 멋져(당시 여자애들의 이름은  숙자 영순 은희 미숙 민이 정례 복님 미경  등 이었으므로 )보였었다.  하지만 삽시간에  밤 하늘에 저 별이 돼버렸다.

누구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거나 특별히 내색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설령 누구에게 말 한다 해도 너와는 상관없는 사람인데 뭐 그렇게까지 생각할 일이냐고 할 건 뻔했으니까!

 

이런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선생님은 결국 결혼하였다. 집안에서 계속 강권하자 세 번째 선 보는 여자와 무조건 한다 하여 어쩐지 조용해 보이는 그 근동 초등학교 선생님과 혼례를 올렸다. 그 당시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조금 남의 안 좋은 말을 듣더라도 선생님과 결혼했더라면 서울로 안 갔더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내 마음엔 아직도 여전히 18세 혹은 13세 소녀로 남아있다. 그 부모는 딸의 흔적을 못 지우고 얼마나 아파하며 살아갈까. 아니면 이미 살아갔을까.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지금도 진상이 언니처럼 예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하였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만난,  깨끗하고 순결한 눈으로 본 저절로 끌렸던 아름다운 얼굴!

둥글지도 길지도 않은 하얀 얼굴 볼 발그레한 얼굴, 청소한 듯 맑고 큰 눈에 모나지 않고도 반듯한 코, 조용한 입술, 자꾸 보아도 다시 시선이 가서 안 보는 척 슬쩍 보고, 저절로 봐진 척하며 다시 또 보게 되던 언니!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곱게 태어나

본인의 잘못 없이 비운에 가버린

내 마음 속 *진상 언니를

                

  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끔씩 그려 보곤 한다.   

 

                                                                            -편집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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